천안함 피격으로 희생된 용사의 유족이 문재인 대통령을 막아서며 “누구 소행인지 밝혀달라”고 호소했다. 예기치 않은 상황과 마주한 문 대통령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27일 문 대통령은 국립대전현충원에서 국가보훈처 주관으로 열린 ‘제5회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 참석했다. 서해수호의 날은 제2연평해전,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도발 등 서해에서 발생한 남북 간 무력충돌에서 희생된 55용사들을 기리는 날로, 문 대통령은 취임 후 처음으로 참석했다.

문 대통령은 기념식이 시작되고 현충탑 헌화·분향 순서에서 향초를 향해 손을 뻗자 갑자기 한 유족이 뒤에서 “대통령님”이라고 소리치며 문 대통령을 막아섰다. 비옷을 입은 백발 할머니는 2010년 3월26일 천안함 피격으로 막내아들 고(故) 민평기 상사를 떠나보낸 윤청자(76)씨다. 윤씨는 천안함 폭침 직후인 2010년 6월 사망보상금 등 약 1억9000만원을 청와대와 해군에 기부한 바 있다.

윤씨는 “대통령님, 대통령님, 누구 소행인가 말씀 좀 해주세요”라고 호소했다. 이어 “여태까지 누구 소행이라고 진실로 확인된 적이 없다”며 “이 늙은이 한 좀 풀어달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잠시 분향을 멈춘 뒤 “정부 공식 입장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윤씨는 “다른 사람들이 저한테 그런다. 이게 어느 짓인지 모르겠고. 대한민국에서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고 하는데 저 가슴이 무너진다”며 “이 늙은이 맺힌 한 좀 풀어달라. 대통령께서 꼭 좀 밝혀달라”고 거듭 요청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걱정하지 말라”며 윤씨를 다독인 뒤 분향을 이어갔다.

천암함 폭침사건은 2010년 3월26일 오후 9시22분 백령도 서남방 2.6㎞ 해상에서 경계 임무를 수행하던 천안함이 북한 잠수함의 어뢰 공격으로 침몰해 해군 장병 46명이 희생된 사건으로, 올해로 10주기를 맞았다. 국방부는 그해 5월20일 천안함이 북한의 소형 잠수함정에서 발사된 어뢰에 침몰당했다고 발표했다.

윤씨를 비롯한 천안함 용사 유가족들은 그간 문 대통령이 공식석상에서 천안함 침몰 원인이 북한 소행이라고 말한 적 없다며 서운한 감정을 가져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문 대통령을 향한 절규도 이런 감정이 폭발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기념식에는 제2연평해전 전사자 유가족과 연평도 포격도발 전사자 유가족, 천안함 피격용사 유가족과 천안함 수색 도중 숨진 고 한주호 준위의 유가족 등 100명의 유가족이 참석했다.

문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총탄과 포탄이 날아드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영웅들은 불굴의 투지로 최후의 순간까지 군인의 임무를 완수했다. 영웅들이 실천한 애국심은 조국의 자유와 평화가 됐다”며 “아무도 넘볼 수 없는 강한 안보로 한반도 평화와 번영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와 협력을 이끌 수 있게 됐다”고 서해수호 용사들을 기렸다.

그러면서 한주호 준위, 서정우 하사, 문광욱 일병 등 희생 용사들의 이름을 언급하며 “경의를 표하며, 유가족들께 깊은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용사들의 헌신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올해 163억원 수준인 ‘전상수당’을 내년 632억원 수준으로 5배 인상하고, 국가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한 분들을 위한 예우에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